농암종택 일엽편주 약주의 패러다임을 깨준 맛있는 한국 전통주

 

일엽편주 약주 

한 1년전 약주를 한병 선물 받았었다. 주로 와인과 맥주를 즐겨마시는 사람이었는지라 약주라길래 편견을 가지고 한식을 먹을 때에도 오픈하지 않고 관심 밖에 두던 술이었는데, 얼마전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마실 술이 없길래 생각나서 그자리에서 오픈해서 마셨던 약주다. 실제로 기대하지 않고 오픈하고 마셨는데 어찌나 한식과 잘 어울리는지. 기존에 마시던 한국의 소주의 인공적인 느낌은 없고 아주 은은한 잔향과 생각보다 15도의 도수지만 강렬하지 않은 느낌이 인상적인 술이다. 

궁금해서 공식 홈페이지를 들어가봤다. "일엽편주 - 한 일 , 잎 옆 , 작을 편 , 배 주 " 라는 이름의 술로 600년 동안 술의 종가로 이어지고 있는 농암종가에서 빚은 술이라고 한다. 술로 시간을 거스르는 유유자적의 마음과 시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문구에 귀한 술을 내가 몰라봤구나. 내심 미안해지기도 했던 포인트. 

양조장의 스토리

1547년 7월 여름. 농암 이현보와 퇴계 이황 금게 황준량이 조그만 배를타고 바위에 줄을 묶어 자연을 만끽했다고 한다. 날은 저물고 구름이 달빛을 가리어 물빛이 흐릿하고 촛불을 밝히고 술잔을 나누며 풍류를 즐겼다고 하는데 
" 이중에 시름없으니 어부의 생애로다. 
일엽편주를 만경창파에 띄워 두고 인간세상 다 잊었으니 세월 가는 줄 알리오"  - 어부가 농암 이현보 

제조장은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농암종택 전통주 라고 나와있다. 유통기한은 꽤나 넘겼으나 이 맛이 유지되는걸 보면 만들어지지 얼마되지 않은 약주는 어떤 맛일지 궁금해진다. 위에 적은 문구처럼 양조장의 사장님은 농암 이현보의 문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이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물 쌀 전통누룩만을 이용해 전과정 수작업으로 소량 생산해내는 무여과 생주. 2차례의 발효와 40일간의 숙성을 거쳐 100일동안 발효해 만드는 술이라고 적혀 있는데 알고 마시니 더욱 더 맛이 좋았다. 잘 숙성된 쌀 술에서는 복숭아와 배향과 오묘한 향기가 조화롭게 퍼진다고 하는데, 차갑게 마시면 생주 특유의 신선함을 미지근하게 마시면 풍부한 향과 쌀의 단맛을 더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열처리가 없이 살아있는 균을 그대로 넣은 무여과 술이기에 시시각각 맛이 달라진다고 하니 먹다 남은 술도 시간을 두고 와인처럼 맛의 변화를 느끼면 재미있겠다 . 

 

사람이 닿는 곳에 머무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 형태가 다를 뿐 사람에게로 이어진다는 본질을 생각한다고 하는데 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술을 한 사람의 손으로 찍어내는 종이로 감싸는 일은 느리고 불완전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고 있다고 언급하셨던 부분에서, 외국인들에게 자신있게 소개시켜 줄 수 있는 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보았다. 

직접 손으로 빚어 술을 만드신다는 부분도 와닿았지만, 한국의 전통을 그대로 담고 있는 한지에 농암 이현보의 어부가에 대한 존경을 담아 농암에게 써준 퇴계 이황의 글씨를 집자하여 일엽편주 병목 라벨을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런 종이를 왜 붙인걸까? 의아해 했었는데, 술을 만든 장인 분의 얼을 담고 있었다니... 역시 사람은 알아야 한다. 

모두 활판인쇄를 하고 아교질로 마무리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단단하고 우아한 종이라고 생각하는 한지라는 소재에 이 글귀를 담아내었다는 점에서 왠지 이 라벨은 버릴 수 없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온라인 공간이라 자세히 적긴 뭐하지만 청주와 탁주는 3 정도 일엽편주 소주는 7정도에 가격이 형성되어져 있었다. 

처음엔 그냥 술인줄 알았는데 선물해준 지인이 꽤나 좋은 술을 선물로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껴본다. 

불투명한 맥주와 같이 노란색을 띄던 일엽편주 청주. 15도의 비교적 높은 도수였지만 술술 넘어가며 좋은 술에서 나는 향이 이런 거구나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식사할 적 함께 한 할머니께서 이거 참 좋은 술이라고 말씀해주시는 걸 보고, 역시 좋은 술인지 아닌지는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께 묻는게 맞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사실 한국 술에 대한 인식이 더 좋아지고 글로벌하게 성장했으면 하는 욕심도 있는지라 근본있는 술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공산화 된 막걸리나 청주가 아닌 이런 옹골찬 고집과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양조장이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종종 이런 숨겨진 양조장을 발굴해내어 맛있는 식사와 함께 술을 곁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